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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추억" 줄거리 특징 후기 결론

by lagom1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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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추억
살인의추억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자, 한국 범죄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설적인 작품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실제 발생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시대와 인간, 무력한 권력, 무지한 정의를 정면으로 마주한 이 영화는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고군분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목도한 부조리한 어둠을 압축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형사물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이 영화는 사실상 진실을 쫓는 인간의 좌절과 끝없는 무력함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살인의 추억』은 단순한 추적극을 넘어 기억의 윤리를 묻는 영화로 남는다.

줄거리

농촌, 여성, 비, 붉은 옷, 그리고 죽음

1986년, 경기도 화성의 한 시골 마을. 논밭이 이어지고, 기차가 지나가며, 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놀고 있는 이 평범한 공간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 피해자는 비가 오는 날, 붉은 옷을 입고 외진 길을 지나던 여성.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사건. 범인은 여성을 대상으로 정교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범행을 반복하며, 패턴과 기호, 조롱이 점점 선명해진다. 현장을 담당하는 지방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폭력적이고 직관적인 수사 방식에 의존한다. 그는 마을 주민 중 지적 장애가 있는 백광호를 용의자로 의심하고, 물증 없이 고문과 협박으로 자백을 유도한다. 하지만 그 모든 추측은 번번이 허물어지고, 박 형사는 점점 스스로도 자신의 정의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파견된 서태윤(김상경)은 이성과 논리,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려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 이해할 수 없는 범인의 정체성, 무기력한 행정 시스템 앞에서 그의 이성도 점점 무너진다. 영화는 그렇게 형사들이 사건을 좇는 6년 동안의 시간을 무수한 단서, 의심, 실패, 좌절로 엮어가며 미궁 속 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마침내, 한 명의 진짜 용의자가 등장하지만 DNA는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희망이 끊기고, 시간은 흘러 몇 년 후의 박두만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특징

1) 장르를 넘어선 리얼리즘
『살인의 추억』은 전통적인 스릴러나 범죄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고, 극적인 전환도 없으며, 주인공의 성장 서사조차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무기력함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재현하며,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닌 ‘범인을 잡지 못한 이야기’로 남는다. 무너지는 수사체계, 비협조적인 행정, 과학 수사 기법의 부재, 불완전한 법적 장치들. 이 모든 요소는 한국 사회가 겪었던 1980년대 후반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다.

2) 인간의 얼굴, 그리고 감정의 균열
송강호의 얼굴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서사 장치처럼 기능한다. 처음에는 의욕과 확신으로 가득했던 형사지만, 거짓 자백, 잇따른 실패, 동료의 죽음, 범인의 조롱과 무력한 시스템을 겪으면서 그의 표정은 점점 말라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 그 정면 응시는 범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관객에게 묻는 것 같기도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단 한 컷의 정지된 시선은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인간적 고백이다.

3) 날씨와 공간, 그리고 정서의 설계
『살인의 추억』은 공간과 날씨를 통해 감정과 긴장을 설계한다. 비 오는 날 발생하는 살인, 미끄러운 논두렁, 짙은 안개, 낡은 학교, 형광등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취조. 이런 물리적 공간들이 관객의 감정에 스며들며 영화의 공포가 장면이 아닌 공기로 존재하도록 만든다. 강렬한 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배경과 감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침묵 속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 영화의 미학이다.

후기

『살인의 추억』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영화다. 오히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더 깊은 통찰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단순히 미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사건을 통해 사회를 보고, 사회를 통해 인간을 본다. 박두만과 서태윤, 두 형사의 갈등과 협력은 그 자체로 이성 VS 감정, 도시 VS 지방, 제도 VS 개인의 충돌을 상징한다. 범인을 잡지 못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애절하고 처연하게 만들어낸 것은 봉준호 감독의 대단한 감각이다. 게다가 2019년, 실제 범인이 밝혀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단순한 극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억 그 자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끝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음 속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결론

「살인의 추억」은 범죄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기억의 윤리에 도달한 영화다.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흔들리고, 누구나 무지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무지 앞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형사들의 무력한 싸움은 결국 정의롭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했고, 그 기억 덕분에 결국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한 편의 영화로 그 시대를 붙잡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자신의 책임과 슬픔을 나눠 가졌다. 『살인의 추억』은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사람들, 어떤 시간, 어떤 잘못에 대한 영원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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