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2022)」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항공 재난 스릴러’라는 장르에 도전한 작품으로, 한재림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다. 기내라는 밀폐된 공간, 무작위적 감염, 그리고 인간 본성의 극한 상황이라는 요소들을 결합해 ‘재난’이라는 장르의 외피 속에 사회적 윤리, 감정의 통제, 집단과 개인의 갈등을 내포하고자 한 시도가 담겨 있다. 『비상선언』은 단순한 위기극복 서사를 넘어, 우리는 위기 앞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한계이자 가능성이기도 하다.
줄거리
비행 중 감염, 하늘 위에서의 공포
한 남성이 인천공항을 배회한다. 그는 수상한 행동을 반복하며, 탑승 전부터 승객들을 살피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 남자, 진석(임시완)은 결국 항공편 KI501편에 탑승하고, 비행기는 하늘로 이륙한다. 같은 시각, 지상에서는 전직 형사 인호(송강호)가 진석의 불안한 행적을 감지하고 그를 쫓는다. 진석이 탑승한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아내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은 그의 개인적 위기로도 확장된다. 이후 기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 증상이 발현된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승객들, 빠르게 전염되는 바이러스, 그리고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승무원과 조종사들. 조종사마저 사망하면서 항공기는 사실상 조종불능 상태에 빠진다. 정부는 즉시 ‘비상선언’을 발동하지만, 각국은 자국 보호를 위해 한국 비행기의 착륙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하늘 위에서 고립된 채 시간과 연료가 떨어지는 KI501편. 남은 승객들과 부기장, 그리고 지상의 인호, 수사관 수빈(전도연)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 항공기를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 영화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생명이 우선인지 명확한 답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징
1) 항공 재난과 바이오 테러의 이중 구조
『비상선언』은 전형적인 항공 재난에 바이오 테러라는 설정을 결합했다. 이 두 가지 장르가 만나 초반부는 강한 몰입감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기내라는 폐쇄 공간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관객에게 ‘공간의 함정’이라는 특유의 긴박감을 부여하며, 무작위로 퍼지는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구조를 계속해서 견고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다. 초반 1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설정과 사건의 반복, 그리고 인물 간 감정의 순환이 서사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2) 캐릭터들의 감정 선과 중첩된 입장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들이 모두 겹친 감정의 입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인호는 형사지만, 자신의 가족이 사건에 직접 연결돼 있다. 수빈은 정부 수사관이지만, 국가의 이익과 개인의 윤리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조종사 현수(김남길)는 승객들의 생명과 자신의 생존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두려움을 겪는 인물이다. 이처럼, 등장인물 모두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 갈등과 타협 속에서 인간적인 감정으로 흔들리는 존재라는 점은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3) 윤리와 공포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영화
감염된 기내에서 착륙을 거부당하는 상황은 ‘누가 누구를 살릴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이 질문을 구체적인 논의나 구조적 접근으로 이어가지 않는다. 기내에 남은 사람들과 지상에서의 대처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향해 움직이고, 그 결과 이 영화는 정치적 재난 영화도, 철학적 공포 영화도 아닌 감정 중심의 드라마에 가깝게 마무리된다.
후기
『비상선언』은 큰 기대 속에 개봉했지만, 그 기대에 온전히 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재난 장르라는 점에서 스케일과 서사 모두에 대한 기대가 컸고, 캐스팅 또한 역대급이었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긴장감이 초반 이후 유지되지 않는다’, ‘감정선이 너무 과잉된다’, ‘현실성과 리얼리티가 다소 결여되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다만, 이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봉하며 감염과 봉쇄, 공포와 혐오라는 우리 모두의 집단 기억과 연결되어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또한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의 감정 연기는 이야기의 중심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관객을 잡아두는 힘이 된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인간적인 선택, 인간적인 약함을 정면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한 편의 영화로서는 무게를 모두 감당하기엔 과도하게 복잡했고, 그 복잡함이 스토리의 밀도를 낮추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가 아닌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를 묻는 시도로서 의미가 남는다.
결론
「비상선언」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한 영화다. 긴박한 액션과 감염의 공포를 앞세우지만, 결국 그것들을 통해 인간의 두려움, 회피, 책임, 연대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고, 그래서 영화는 장르성과 메시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재난 영화로서도, 휴먼 드라마로서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이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바이러스의 공포, 고립과 봉쇄, 그리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무력감. 『비상선언』은 그런 시대의 잔재 속에서 감정이라는 이름의 정직한 서사를 시도했다. 그 시도가 다소 어설펐을지라도, 이 영화는 한국형 재난 영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우리가 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묻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긴 진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