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The Witch: Part 1. The Subversion, 2018)」은 박훈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한국형 장르 영화의 또 다른 실험이자, 성장 영화와 초능력 액션, 미스터리 서사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이다. 영화는 초반에는 잔잔한 성장 드라마처럼 시작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폭력과 기억, 실험과 인간성이라는 더 크고 잔혹한 질문들로 확장된다. 주인공 ‘자윤’을 연기한 김다미는 신인답지 않은 폭발력을 선보이며 이 작품을 단숨에 한국형 여성 액션 장르의 신호탄으로 만들었다. 『마녀』는 ‘마녀’라는 제목처럼 강력하지만, 잊혀진 존재를 부활시키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제시한다.
줄거리
기억을 잃은 소녀, 평범했던 삶의 붕괴
10년 전, 비밀연구소에서 한 소녀가 탈출한다. 온몸에 피를 흘리며 도망친 아이는 한밤중의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이후,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시골의 노부부에 의해 구조된다. 시간이 흐르고, 그 소녀는 ‘자윤(김다미)’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 농장을 돕고, 학교에 다니며 조용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점점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두통, 이유 모를 신체 능력, 그리고 TV 오디션 방송에서 보여준 능력 이후 의문의 인물들이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그들 중에는 닥터 백(조민수)과 의문의 남자 ‘귀공자(최우식)’가 있다. 그들은 자윤을 ‘그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다가오고, 자윤은 점점 더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자윤은 기억을 되찾는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가해자이자, 살아남기 위해 연기했던 존재였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아 있는 모든 위협을 제거하려 한다. 마지막, 자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
특징
1) 장르적 전환을 활용한 서사 구조
『마녀』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장르처럼 느껴진다. 초반은 시골 소녀의 성장 이야기, 다정한 가족, 친구와의 우정,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잔잔하고 익숙한 일상물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이 영화는 초능력 실험체가 세상을 뒤흔드는 액션물로 돌변한다. 장르적 전환은 갑작스럽지만, 그 ‘불협화음’이 오히려 자윤이라는 인물의 이중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2) 여성 중심 액션의 새로운 시도
자윤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이고, 살인자이자 기억을 가진 실험체다. 그녀는 단순히 힘이 세고 빠른 능력자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자기 통제를 지닌 인간 병기다. 김다미는 이 인물을 처음에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여주다가 후반부엔 냉혹하고 계산적인 파괴자로 바꿔간다. 이 이중성의 연기는 여성 주인공이 이끄는 한국 액션 영화가 어떻게 새롭게 설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 기억, 정체성, 그리고 실험체라는 주제
이 영화는 액션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는 정체성의 혼란과 조작된 기억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자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싶어 했고,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연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녀는 기억을 되찾고 나서야 누구를 믿을 수 없으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질문은 단순히 영화 속 자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채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메타포처럼 이 주제는 관객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4) 미장센과 액션 연출
『마녀』의 액션은 화려하기보다 정확하고 잔인하다. 총격, 맨몸 격투, 실내 전투 모두 밀도 높은 공간 활용과 긴장감 조율로 완성된다. 특히 하얀 실험복을 입은 자윤이, 피를 뒤집어쓰며 실험실을 탈출하는 장면은 한국 액션 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감정 없는 표정, 주저 없는 공격, 하지만 그 안의 깊은 공허 —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말해준다.
후기
『마녀』는 개봉 당시 ‘Part 1’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세계관 설명 없이 끝나는 결말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누군가는 서사의 불친절함을 비판했고, 누군가는 이 영화의 정체불명의 긴장감과 묘한 이끌림을 칭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녀』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을 주제로 한 ‘반(反) 히어로 성장기’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후속편에 대한 기대 역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특히, 김다미라는 배우는 이 한 편의 영화로 단번에 차세대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했고, 그녀의 감정 절제와 분노 폭발 사이의 연기는 장르영화 안에서도 드라마적 감정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윤의 서사에 집중한다. 그 덕분에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설정들이 ‘한 인간의 각성’이라는 흐름으로 정리된다. 영화를 본 후 남는 것은 화려한 장면보다도 자윤의 정면 응시이다. “나는 이제, 나를 잊지 않겠다.” 그 시선이 우리에게도 말을 건다.
결론
「마녀」는 한국 장르 영화 안에서 새로운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실험한 도전적인 작품이다. 그녀는 히어로도 아니고, 악당도 아니다. 그녀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고, 공격하고, 기억해야 했던 소녀다. 영화는 복잡한 세계관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호함은 자윤이라는 인물의 정체성과 정확히 닮아 있다. 『마녀』는 자신의 본능을 되찾은 소녀의 이야기이자, 세상이 만든 괴물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된 순간, 이 영화는 끝나지만,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래서 『마녀』는 ‘Part 1’이며, 또한 장르와 캐릭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이야기다. 자윤은 이제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진짜 마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