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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줄거리 특징 후기 결론

by lagom1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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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곡성

 

「곡성 (The Wailing, 2016)」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한국형 미스터리·스릴러·공포 영화다. 처음에는 낯선 외지인의 등장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죽음과 발작이라는 외형적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면에 감춰진 믿음, 무지, 혼돈, 악의 본질이라는 보다 심오하고 복합적인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황정민, 곽도원, 쿠니무라 준 등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이고, 장르적 긴장감과 종교적 은유, 동서양 신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징들까지 『곡성』은 단 하나의 해석에 가둘 수 없는 끝없이 열려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공포의 순간보다도 그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영화다.

줄거리

죽음과 광기, 그리고 외지인의 등장
평화롭던 시골 마을 ‘곡성’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가족을 살해하거나, 정신이 나가 폭주한 채 죽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 원인을 ‘산에 사는 일본인’에게 돌리기 시작하고, 소문과 공포는 동시에 확산된다.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이 마을의 경찰이다. 그는 처음엔 무지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사건을 대하고, 동료들과 함께 그저 흘러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자신의 딸 효진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외지인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효진은 점점 이상한 증상을 보이고,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진다. 종구는 마을의 무속인 ‘일광(황정민)’에게 도움을 청한다. 일광은 ‘귀신 들림’을 확신하며 대규모 퇴마 의식을 진행하고, 종구는 그 속에서 딸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건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일본인(쿠니무라 준)은 정말 악령인가? 무속인 일광은 진짜 진실을 아는 자인가? 그리고 효진의 몸 안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이 모든 혼란 속에서 한 인간의 믿음의 붕괴와 선택의 결과를 따라간다. 그리고 마지막, 종구는 자신의 무지와 의심, 두려움 속에서 가장 잔인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특징

1) 단일 장르에 가두기 힘든 복합적 구조
『곡성』은 공포 영화처럼 시작된다. 살인, 발진, 광기, 죽음. 하지만 영화가 깊어질수록 그 장르는 심리 스릴러, 미스터리, 종교 스릴러, 민속 신화극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복합적 구조는 관객에게 끊임없는 혼란을 야기하지만, 그 혼란 자체가 감정의 공포에서 철학적 공포로 이끄는 장치가 된다.

2) 선과 악, 누가 진짜인가?
영화는 끝까지 ‘누가 악인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일본인이 악령인지, 무속인이 거짓인지, 기독교 신부가 진짜 영적인 힘을 가진 자인지 그 누구도 확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곡성』은 공포를 ‘실체화’하지 않고, 믿음의 주체인 인간의 불완전함을 통해 공포를 확장한다.

3) 무지한 인간이 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테마는 ‘믿음’과 ‘무지’다. 종구는 믿고 싶은 대상을 바꾸며 흔들린다. 일광을 믿었다가, 다시 신부를 믿었다가, 다시 자신의 눈앞 상황에 무너진다. 그의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공포와 절박함에서 비롯된 임시적 선택에 불과하며, 결국 그런 불안정한 선택이 가족의 비극을 초래한다.

4) 상징과 이미지의 힘
붉은 색, 까마귀, 짐승의 사체, 산 속의 동굴, 비 오는 날의 도로, 이 모든 장면은 상징 그 자체다. 특히 ‘사진을 찍는 일본인’, ‘닭을 잡는 일광’, ‘흰 옷을 입은 여인 무명’의 등장 장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기억에 남는 미장센을 완성한다.

후기

『곡성』을 본 관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해석하려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해석을 포기하는 사람들. 이 영화는 ‘스토리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감정의 체험이 더 중요한 영화다. 즉, 이 영화는 '이해'보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종구라는 인물은 딸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지하고, 흔들리며, 실수한다. 그의 실수는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그 실수가 너무 인간적이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관객은 영화 내내 누가 진짜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무명의 대사 —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가 네 가족을 죽인 자다.” 그 말조차 우리는 믿어도 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게 바로 『곡성』의 공포다. 악령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의 내면, 그 자체가 가장 두렵다. 결국 우리는 종구처럼 정보 속에서 흔들리고, 상징 속에서 길을 잃으며, 결정의 순간에 가장 나쁜 선택을 하게 된다.

결론

「곡성」은 단순히 귀신이 등장하고 사람이 죽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신과 악마, 믿음과 무지, 선택과 결과에 대한 인간 내면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무당이 진짜인가? 외지인이 악마인가? 신부가 구원자인가? 영화는 어느 하나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답 없음’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곡성』은 무서운 영화이지만, 그 공포는 귀신이나 살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었지만 틀렸던 나’를 깨닫는 순간에 있다. 이 영화는 다시 봐도 새롭고, 다시 봐도 낯설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공포다. 우리는 끝내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 채 결정하고, 후회하며, 어쩌면 그 책임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곡성』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믿음이란 이름의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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